나의 광기 모음 2
2025년 4월부터 쓰다가 멈췄던 이 글에, 전과 후부터 학부를 졸업하기까지 있었던 광기들 뿐만 아니라 나의 노력과 우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기회가 생겼던 순간들을 모아보았다. 11. 전과 후 바로 데이터사이언스 학부 수업 6개를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다. 외국인 학생들이 40%이고 매시간 영어로 다른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 머신러닝1 수업에서 룩셈부르크, 독일에서 온 교환 학생과, 말레이시아 유학생과 먼저 친해졌다. 그 친구들과 가봤던 말레이시아 유학생들의 동네 잔치른 학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이다. 12. 고등학교(에서는 한 번도 대화조차 한적이 없었던) 동문 친구가 같은 시기에 컴퓨터 전공으로 전과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주 만나기 시작했는데, 마침 경제금융학부 부전공을 신청한다고 해서, 처음 만났을 때 함께 한 일이 행정팀으로 가서 (나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경제금융학부 다중전공 신청서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량경제 수업을 여름학기에 듣는다고 하길래 나도 따라 들었다. 당시에 나는 거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이 계량경제는 과목은 이후 학부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과목 중 하나가 된다. 13. 전과 직후 여름학기에는 계량경제, 미분적분학2, 사회봉사까지 7학점을 신청했다. 계절학기 기간이었던 약 3주는 정말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정에 3열람실에서 졸음이 몰려오다가 미적분2 중간고사 기출 문제가 안풀려서 잠이 확 깨기도 하고 그러다가 오전 5시 30분에 집으로 돌아가서 3시간쯤 자고 사회봉사 하러 가고 봉사 끝나고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돌아가서 시험 공부를 하고, 그런 식으로 3주를 살았다. 계절학기가 끝난 후에도 방학 중에는 도서관에 계속 갔다. 금융공학으로 진로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고, 혼자 도서관에 앉아서 옵션의 payoff, Put-Call Parity, 블랙숄즈 SDE와 확률 공간 등등에 대해 열심히 구글링하며 나름의 공부를 했다. 14. 2학년 2학기에 어떤 경제 수업을 신청할까 고민하다가 미시경제학2를 냅다 신청해서 수강했다. 나는 미시1도 듣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모르는 부분들을 혼자 열심히 채워야 했다. 다만 오히려 지난 여름학기의 미적2를 통해 Lagrange multiplier를 배웠으니까 utlity maximization 내용은 오히려 빨리빨리 넘어가는 등 수월한 부분들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불확실성 하의 선택(Choice under uncertainty)이었다. 이 파트를 중간고사 기간에 도서관 3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울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하루(2023.10.17)는 생산요소시장에 대해 보다가 밤 11시에 도서관을 나서고, 다음날 5시 반에 집을 나서서 등교했다. 장한평역 출구 앞 토스트 사장님이 새벽 5시 40분쯤 문을 여신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시 화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3개의 과목을 들었는데, 그 사이 도합 6시간의 공강은 미시2, 선형대수 등등을 복습하느라 공강에 신나게 놀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용이 어려워서 힘들 때는 있어도 '공부 하기가 너무 싫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학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미시경제학의 마지막 단원이었던 정보경제학의 내용이 흥미로워서 인지과학기초 발표를 할 때 결부시켰던 것이다. 15. 전과 성공 사실을 에브리타임에 글로 쓴 후로 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의 전과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과 쪽지를 주고받았다. 그중 학교에서 만나서 관련 정보를 드린 경우도 두 번 있었다. 그중 한 분은 내가 선수강 과목으로 지정받은 선형대수학을 같은 수업에서 듣고 계셨고, 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 전과에도 성공하셨다. 그리고 또 한 분과는 12월 기말고사 공부로 한창 바쁠 때 만났는데, 왕십리 김치찌개 명가인 장어구이에서 아이패드로 내 수강 과목들을 보시더니 퀀트에 관심있냐고 먼저 알아채셨다. 공감대가 있길래 시험 공부도 뒤로 하고 점심 후에도 몇 시간 얘기를 했는데, 그러다가 종강 후에는 경영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학기 수업의 존재도 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16. 해당 프로젝트 학기를 통해 종강 후 연구에 참여할 기회 하나를 얻었고, 4학년 1학기에 집중적으로 작업해 논문의 원고를 완성 후 submit할 수 있었다. 정말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한 결과 간신히 기회가 찾아왔고, 그 후에도 submit까지의 과정에서 쉽게 된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기회를 만든 과정도 없는 길을 만들어낸 것이었고, 학기 중에는 아침 9시에 등교해서 밤 9시까지 기다린 끝에 피드백을 받아가며 원고가 완성됐다. 17. 같은 시기, 경제금융학부 교수님의 RA 활동도 시작되었다. 학부에서 했던 일들 중 가장 challenging하고, 한계를 여러 번 깨고 올라가야 했던 것이 이 작업이었다. 직전 학기에 게임이론 수업 교수님께서 종강 후 공지로 올려주셔서 알게 된 기회였고, (나중에 알았지만) 교수님께서는 RA 선발 시에 내가 머신러닝 과목들을 수강한 내역을 고려하셨다고 하셨으니, 이또한 꽤나 많은 우연들이 겹쳐서 생겨난 기회였다. 그나마 직전 학기에 말레이시아 친구와 팀플을 하며 딥러닝 모델의 소스코드를 읽는 연습을 한 적이 있었기에, scikit-learn 기반으로 작성된 랜덤포레스트 소스코드를 열심히 읽으며 반 년간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했다. 사실상 지금까지 다룬 내용은 모두 경제학보다도 머신러닝과 통계였다. 18. 4학년이 된 후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몇 년 전 국내 큐브 랭킹에서 성함만 알고 있었던 교수님께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고, 에타에 올라온 회사 홍보 글을 보고 커피챗을 요청하기도 했고, 오르비에서 쪽지를 보내서 커피챗을 가졌다가 내가 지원할 대학원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듣기도 했다. 대학원 입시가 끝난 후에는 그간 감사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곤 했다. 별 다른 것이 아니라, 학생식당에서 몇 년만에 보는 나를 먼저 알아보고 함께 밥을 먹거나, 수업 정보가 필요해서 연락을 했을 때 친절히 받아주신 그런 분들께 연락을 하고 찾아다녔다. 학부에서 내 스스로의 성취는 충분히 챙겼지만, 반대급부로 주변인들에게는 소홀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살면서 그런 기간도 있는 거지'라고 말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19. 대학원 면접을 마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을 때, RA 업무를 주셨던 교수님을 통해 TA 일을 해볼 기회가 찾아왔다. (영어로 진행됨을 시작 10분 전에 알려주신) 줌 인터뷰가 바로 다음 날에 있었는데 마침 시간이 됐고, 다다음 날에 있었던 OT도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도 심상치 않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14주차까지는 별 일 없이 진행됐고, 15주차에는 학교에 남아서 팀플 작업을 하는 학생들을 구경하다가 그중 몇 명과 친해지며 종강을 했다. 이틀 연속으로 밤 10시가 넘도록 학교에 남아있었던 것은 막학기에 가장 도파민이 터진 경험들 중 하나였다. 20. 모든 졸업 요건을 채우고 1월이 되었다. 여전히 열심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던 중, 경영대 프로젝트 학기 수업에서 옆 팀에 계셨던 분과 만날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보니 그분께서 보고 계시던 연구 주제에 대해 얘기하게 되고, 결국 그 주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 한 번 우연이 찾아온 사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평소 뭐든 열심히 하고 준비되어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1년도 더 지난 프로젝트 학기 수업에서 내가 발표하던 걸 기억한다고 하셨는데, 만약 그때 내가 그 주제를 대충 작업했다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비트코인에 사용되는 타원곡선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만큼 평소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내가 대학원 합격 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진짜가 아니라면 낼 수 없는 그 느낌을, 자연스럽게 낼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함을 절감했다.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대략 학부 4학년 1학기 쯤이었던 것 같고, 다시 정리해서 올리는 2026년 1월 현재는 진학할 대학원에 입학 준비를 하며 나의 주변인, 하는 일, 하는 연구를 더욱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어제 밤에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2년 전 스카이민혁 인터뷰 영상이 보이길래 홀린 듯 정주행했고, 오늘은 이 글을 마무리하며 스카이민혁의 해방 전곡을 다시 들었다. 해방은 현재까지 내가 거의 유일하게 전곡을 모두 유심히 들은 앨범이다.한창 들었던 것은 약 1년 전이었고,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내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의 발단은, 8년 전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때 반 배정을 듣고 현타가 세게 왔던 것이었다. 내가 공부를 더 잘했더라면 상황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학교 공부에 대해서도 더 의욕이 생겼고 안 그래도 내가 속한 환경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던 차에, 마침 당시에 알게 된 타지의 고등학교에 지원했다. 그곳에서 내 노력으로 성취를 해내는 경험을 하나둘 하다가 새롭게 적성을 확신했고, 대학교에서도 항상 스스로를 믿으며 미친 듯이 달려오니 벌써 8년이 지났다. 돌아보니 나를 성장시킨 과거의 시련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이 잘 풀린 것은 오로지 내가 수많은 노력을 통해 잘 대응했기 때문이고, 여러 우연들도 잘 잡아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바라는 바는 비슷하다. 단지 내가 잘한 만큼 보상받고 싶고 내가 못 한 만큼 쓰러지고 싶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상투적인 말도 싫다. 딱 내가 해낸 만큼만 얻고 싶다. 그것이 전부고, 그걸 쟁취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2025년 2, 3, 4월
지난 12월부터 시작해서 올해는 인생 최악의 2월과 3월, 그리고 4월을 보냈다. 여러가지 힘든 일들이 다양하고 심도있게 휘몰아쳤다. 1. 일단 졸업프로젝트 팀이 깨질 뻔 했다. 결국에는 원래 함께 하기로 하던 친구와 팀빌딩을 하긴 했는데, 그 후에 갑자기 졸업 프로젝트 신청 구글폼이 접수되지 않는 일도 있었다. 살면서 처음 겪는 구글폼 누락이 하필 졸업이 달린 일에서 발생했고, 그래도 겨우겨우 진행은 할 수 있게 되었다. 2.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는 정말 더뎠고, 교수님께 답장 받기를 포기하고 있던 때도 있었다. 3. (삭제) 4. 지난 하반기동안 비즈니스랩에서 했던 일들을 바탕으로 연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논문 투고까지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여러 번 내면서 생긴 기회였다. 4-1. 그런데 1~2월에는 거의 진전이 없다시피 했다. 기본적인 수익률 계산의 부호가 완전히 반대로 나오는데 계산 과정에서 문제는 안찾아지고, 그 상태로 한 달간 정체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랬다. 4-2. 겨울방학이 끝나고 3월부터는 매주 화요일에 9to9을 하며 진행됐다. 덕분에 정체되어있던 문제의 원인도 알게 됐고, 본격적인 모델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전처리의 여러 문제들을 뒤늦게 발견해서 헛짓거리를 여러 번 했다. 4-3. 계엄 쯤에 시작된 프로젝트는 탄핵 선고가 나오던 시기까지 이어졌다. 딥러닝 모델 두 개를 열심히 돌려본 후, 4월 초에 다른 시계열 모델들을 테스트하는 시간들이 정말 고비였다. 뭘 해도 결과는 잘 안나오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interior point처럼 프로젝트의 끝에 아무리 다가가도 끝이 없어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4-4. 하지만 더 문제는, 내가 점점 다가가고 있던 것은 프로젝트의 끝이 아니라 제정신과 정신병의 경계라는 점이었다. 학교에 멍하니 앉아서 친구들과 카톡으로 죽고싶다는 말을 수 시간동안 하고 '오늘 집에 들어가서 밤에 혼자 있으면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날에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가 엄습해왔다. 4-5. 중간고사 일주일 전에는 시험 준비를 하기 위해 앉아있다가 추가적인 계산 또는 원고 쓰기를 해야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시험 시작 전날 밤에는 투고하려던 저널이 바뀌는 일도 있었고, 아무튼 이래저래 마음이 담금질되는 기분이었다. 5. 이 모든 일들을 함께 지나갔던 친구들의 존재가 특히 큰 도움이 됐다. 힘들 때 어떻게든 사람들을 계속 만나려고 했던 친구의 마음이 이해되는 듯 했다. 6.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하지만 그에 필요한 사회적 또는 경제적인 여러 기반들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더 크게 느꼈다. 앞으로는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찾아가서 지금처럼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 싶고, 지금의 일들을 나중에는 '다시 생각해도 그 때가 제일 힘들었다'라고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광기 모음 1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소 특이했던 경험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기가 막힌 우연이었던 내 삶 속의 사건들을 모았다. 1.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2013년 6월 14일에 처음 큐브 맞추기에 도전했다. 그리고 제대로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학교 친구들보다는 네이버 카페에서 만난 랜선 친구들과 큐브에 대한 소통을 더 많이 했고, 부모님을 고생시키며 전국 각지의 큐브 대회에 참가했다. 2번의 한국 신기록을 세워보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강의같은 것을 해보기도 했던 경험들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의 시작이 될 줄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결국 나는 큐브를 하다가 만난 친구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의 겨울방학이었다. 매일 독서실에서 고등학교 2학년 과정을 예습하며 다항함수의 미적분을 처음 접했는데,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는 유튜브에서 지수함수나 삼각함수의 도함수를 유도하는 영상을 보곤 했다. 훗날 나는 이를 대학교 전과 면접에서 말하게 된다. 3. 살면서 처음으로 수학에 재미를 느낀 것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때였다. 미분계수의 정의에 대해 배우면서 '미분계수의 좌극한값과 우극한값이 모두 같아야 하면 함수 자체가 직선이라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나의 본능이 보내는 일종의 signalling이 아니었을까... 4.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날 무렵, '미분과 적분'에 관하여 생활기록부 세특으로 쓸 내용을 생각하던 중 접한 것이 선형 회귀였다. 당시 알고 있던 이과 친구들이나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물어보며 손실함수를 미분하여 경사하강을 하는 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무렵 나는 이게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고등학교 3학년 개학을 앞두고 파이썬을 처음 접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위키독스에서 Do it! 점프 투 파이썬을 보라고 해줘서 그렇게 했고, 3학년 1학기에는 선형 회귀와 로지스틱 회귀를 파이썬 코드로 돌려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3학년 1학기에는 세 과목의 세특을 엮어 학급 친구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는 프로젝트같은 것을 했다. 중간고사가 끝났을 쯤 선행 연구를 찾아보고, 질문지를 만들고, 다시 수집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후에는 수집한 질문지를 직접 파일로 바꾸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회귀 분석을 하는 코드를 돌려보고 발표까지 하니 한 학기가 끝났다. 당시에는 그냥 한글로 쓰여진 어떤 논문을 읽으면서 그냥 흥미로웠고, 되는대로 하다시피 진행했지만, 돌아보면 그 모든 것들이 제법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6. 수능이 끝난 후에도 나는 밤이 되면 친구와 심야자습실에 가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실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7. 성인이 되고 한양대학교 경영학부에 입학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보통 공대로 입학한 후 미적분학을 수강하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미적분학 강의자료를 보내달라고 했고, 경영관에 앉아 미적분학의 첫 내용인 엡실론 델타 논법과 삼각함수 역함수의 도함수 등을 살펴보았다. 덕분에 1학년 여름학기가 되자마자 수강한 미분적분학1에서 A+를 받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8. 1학년 여름방학과 2학기는 아마 실감의 존속에 있어 가장 큰 위기였다. 발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고 그냥 묻어두는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시기에 내가 나서서 지속적인 관리와 위클리 미팅을 유지했던 것은, 지금까지 내가 실감에 한 가장 큰 기여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3개월 후 실감의 DAU가 20배 이상 상승하고 많은 유저들의 감사 인사를 받았을 때, 이게 현실인가 싶으면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분 좋음을 느꼈다. 9. 대학교 입학 전부터 목표하고 있던 데이터사이언스학부 다중전공 신청이 1학년 말이었던 12월에 반려되었다. 종강 후에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 시기에 공지가 올라오는 전과에 도전했다. 2학년이 되던 해였던 2023년의 1월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서 지냈다. 전과 지원을 위해 포트폴리오로 쓸 거리를 만들고, 그러기 위해 공부도 더 하고, 파이썬 코드도 열심히 돌려보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 와중에도 실감 인앱결제 상품을 만들기 위해 이용약관과 개인정보처리방침을 쓰긴 했다...) 10. 전과 면접에서는 오히려 미분적분학1의 A+ 학점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수학 공부에 대한 경험을 말했다. '고등학교에서 이과는 아니었지만 초월함수의 미분법 등에 관심을 가진 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전과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걱정과, 나는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혼재되어 미치도록 혼란스러웠던 2023년 1월은 당월 30일에 전과 신청 결재 통보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인사이드 아웃 2 후기
1. "Maybe this is what happens when you grow up. You feel less joy." 누구나 가끔 하는 '걱정없이 살던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영화가 끝나도록 이 장면이 계속 생각났다. 나이가 들수록 느낄 수 있는 기쁨과 고통의 크기가 더 양극화되는 것이라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의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없음은 별 수 없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2. 어릴 적의 Sense of Self를 더이상 지키지 않는 기쁨이 컨트롤 센터에서 좌천(?)됐다가 돌아온 후, anxiety 이외의 감정들이 배제되고 있던 모습을 보고는 기쁨이 역시 과거의 Sense of Self를 떼어버리는 모습은 모두의 성숙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Sense of Self의 형성에는 결국 모든 감정들이 필요함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는 장면이, 다소 뻔한 전개일 수 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3. 우연히도 시기상 내가 사춘기를 보내기 전에 인사이드 아웃이 처음 개봉했고, 9년이 지나 내가 사춘기를 보낸 후에는 인사이드 아웃 2가 세상에 나왔다. 여러 감정들이 서로의 존재성을 인정하게 되는 성장의 과정이, 지난 9년간 내가 겪어온 모든 일들을 함축하는 듯 했다. 동시대에 내가 성장하며 마주한,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며'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유머를 섞어 보여주는 것이 되려 미치도록 아프다.
데이터사이언스학부에서 경험한 것들 (1)
데이터사이언스학부로 전과를 한 후로 예상치 못한 좋은 경험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이곳의 수업에 외국인 유학생/교환학생들이 많다는 점이다. 은근히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본 것만 말레이시아,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모로코, 터키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과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전과 직후에 수강한 미국인 교수의 수업(머신러닝1)이었는데, 해당 수업에서 약 40%가 외국인 학생이었고, 그중 몇몇과 이야기해보면 확연히 어딘가 다르다고 느껴진 지점들이 있었다. 1. 전과 직후에 수강한 미국인 교수의 수업에서 가장 만저 친해진 친구는 룩셈부르크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무슬림이고 라마단을 하는 친구였는데, 가끔 수업 후에 점심 학식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룩셈부르크와 한국의 집값을 비교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이 룩셈부르크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일단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모두와 인사를 한다. 어차피 잘 안맞는 학생이면 그 이후로 더 친해지지 않으면 되니까.' 라고 말했던 것이다. 한국 학생들끼리는 제법 경직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언어였다. 사용하는 언어는 사고방식을 바꾼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 미국인 교수의 수업에서 친해진 말레이시아 친구와 우연히 함께 팀프로젝트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우리는 한 번도 서로의 나이를 직접 물어본 적이 없었다. (여럿이 모인 상황에서 입학 연도나 나이 얘기가 나온 적은 있었지만) 어차피 항상 영어로 대화하니까 나이를 물어가며 어떤 단어 선택을 해야 할지 신경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나이를 궁금해할 유인이 없었기에 우리가 서로의 나이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끼리도 친해지면 나이를 불문하고 허물없이 지내지만, 그것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벽이 한국어에는 있다고 느낀다. 3. 그 미국인 교수의 수업에서 만난 독일 출신 교환학생도 있었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거의 매 수업마다 질문을 하고, 매 수업마다 있는 3-4인 discussion에서도 항상 충분히 발언을 하는 타입이었다. 그 친구가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데이터사이언스와 직결되는 전공을 하는 게 아닌데 왜 이 수업을 들으러 왔냐'는 다른 한국인 학생의 질문에 'Because I'm interedsted in it' 이라고 답하던 모습이다. 학생이 되기를 선택했다면 자신이 열의가 있는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텐데, 왜 그것이 이곳에서는 그토록 보기 힘든 모습이었나 아직도 생각해보게 된다. 번외: 비록 그 수업이 빡센 탓에 에타 평점은 1.6이지만(...) 그 수업 자체도 재밌었다. 매 수업마다 3-4명씩 조를 만들어주면 그 수업의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자의 결론을 반 전체와 공유하곤 했다. 한 번은 gradient descent를 설명하는 수업에서는 '산 위에서 도구 없이 아래로 내려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가 논의 주제였는데, 나는 도저히 생각이 안나던 와중에 어떤 학생들은 '땅을 판다', '몸을 말아서 굴러내려온다', '일단 이동하면서 물을 끓이면 끓는 점이 변화하는 것을 관찰한다' 같은 답을 하는 걸 보고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번외2: 이번 글은 빠니보틀의 영상(https://youtu.be/JeKinbHJnok?si=yKxRlRrdCtOaZVjE&t=2489)에서 아떤 외국인이 영어로 말하는 걸 못알아들었지만 알아들은 척 하는 부분을 보고 생각이 나서 썼다. 왜냐하면 나도 처음 전과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런 적이 많았던 기억이 나서...
중간 점검
올해는 6년만에 본가인 충주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매일 새로운 논문과 연구가 쏟아져 나오며 쉴 새 없이 발전하고 있는 나의 전공에서 벗어나, 풀과 나무가 우거지고 점심 시간이면 캐논 변주곡이 흘러나오는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이곳의 여유를 느끼면 마치 다른 차원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성인이 되기 전 2년, 그리고 성인이 된 후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는 매 순간이 격변의 시간들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나의 길이 이공계열임을 확실히 하며 공부에 눈을 떴고, 성인이 된 후 첫 1년을 보내며 그중에서도 데이터사이언스를 나의 전공으로 쟁취했고, 다음 1년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39학점의 전공 과목을 이수했다. 그리고 최근 반 년간은 이전에 비해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고, 공부 이외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돌아보고자 노력했다. 나에게 있어 시기를 막론하고 time-invariant한 특징이 한 가지 있다면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노션 등의 툴들을 훨씬 체계적으로 쓰는 친구들은 있지만, 나처럼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두고 시기별로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이 습관화된 경우는 드물었다. 돌아보면 이런 나의 성향을 고려해봤을 때, 내가 데이터를 다루는 전공을 선택한 것은 기막힌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략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쌓여온 사진과 글들, 그리고 그 때부터 들어온 노래들은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나아가 먼 훗날의 나를 이어주고 있다.* 스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운 부산 대회 주변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 당시 밥먹고 큐브만 돌리던 그날의 치기가 떠오르고, 수능 당일 아침에 고사장으로 가는 길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 입시와 진로에 대한 고민에 휩싸인 채로 맞았던 서늘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 하다. Sithu Aye의 Double Helix를 들으면 아직도 수분감을 풀면서 졸다가 깨어나던 내가 보이고, 여자친구의 열대야를 들으면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많은 것들이 낯설던 생경함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그에 맞는 사진이나 노래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여가로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들 중 하아니다. 이런 나에 대한 기록들은 나의 외장SSD, 티스토리 블로그, 깃허브 블로그에 저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들을 통합해 나에 대한 '온라인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내가 찍는 사진들, 남기는 글들, 공부한 기록들, 좋아하는 음악들에 대한 기록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한 번에 정리될 것이다. 내가 찍는 사진들, 좋아하는 음악들, 그리고 내가 하는 생각들을 기록하는 공간. 그런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잠시 쉬어가는 활동이자,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결정적인 도움을 받곤 했는데, 돌아보면 한 편으로는 반대로 과거에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 연락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잊고있는 고마움도 많다는 것을 외면하고 살았고, 이제 그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고, 전공과 진로에 대해 폭풍같던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정도 생각들이 수렴해가기 시작하니 이런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도 diffusion term이야 어찌 할 수 없지만, drift term은 확실히 방향을 잡았다고 느낀다. 이제는 금요일 저녁마다 친구를 만나러 가고, 가끔 배드민턴을 치고, 친구 집에서 Wonderwall을 들으며 콘솔 게임을 해보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도 즐거운 일들이 많이 있고, 앞으로는 더욱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런 먼 훗날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고 있을 날을 생각하니 그것조차 기분 좋은 일이다. 그때까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생각은 제법 명학하다. 그것은 코난의 말과도 같다. "Work hard, be kind, and amazing things will happen". * 허준이 교수의 2022학년도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인용